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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하는

#한국문학 #한국소설 #한국책 #가족 #KoreanLiterature

가족은 늘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때로는 가장 멀고 낯선 이름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니까’ 감내해야 하고, ‘가족이 아니니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결혼, 혈연, 입양 같은 익숙한 풍경이 먼저 스친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 결혼하지 않기로 한 친구,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법적 관계로 묶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정상가족’이라는 기준은 여전히 견고하다. 전통적 가족 형태는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그 밖의 삶은 예외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져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익숙한 틀 안에 머물러 있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한다.

김순남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누구나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이나 공동체를 만들고 차별 없이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새롭게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가족은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살아가려는 마음과 일상의 연결 속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섯 권의 한국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 관계와 삶의 가능성을 그리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경계를 확장하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가족이라는 말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고, ‘나’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한국문학이 가족을 둘러싼 질문을 포함하며, 정해진 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삶의 형태와 감정들을 그려낸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을까. 이 책들을 읽는 시간이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결혼과 출산, 가족이 되는 일이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소라, 나나, 나기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그중 나나는 아이가 생기면 결혼해야 하고, 가족이 되면 남이 아니게 된다는 통념을 거부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나나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니다.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된 집에서, 소라와 나기와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간다. 이들의 관계는 전형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서로를 향한 깊은 유대와 돌봄, 그리고 계속 살아가려는 의지로 이어진 존재들이다. 가족이라는 말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관계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부계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 바깥에서 살아온 여성의 삶은 어떤 가족을 만들어낼까.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이혼과 재혼, 비혼과 비출산, 비혈연 가족 등 삼대에 걸친 다양한 삶의 방식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의 틀을 경쾌하게 비껴간다. 각기 다른 가치관을 지닌 구성원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속박하지 않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소설의 중심에는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위해 가족들이 함께 떠난 하와이 여행이 있다. 그곳에서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선을 추억하고, 제사의 의미를 의례가 아닌 살아 있는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으로 다시 써 내려간다. 이 소설은 다양한 선택과 관계가 공존하는 현대 가족의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로는 최은영의 『밝은 밤』, 황정은의 『연년세세』가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에는 언제나 마음이 다치고 부서지는 순간이 따라온다. 무지와 오해 속에서 끝내 좁혀지지 않는 차이를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나란히 서 있으려는 마음이 있다. 윤이형의 소설은 가족을 둘러싼 그 어떤 틀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관계의 복잡함에 대해 질문한다. 「작은마음동호회」는 가사와 육아에 지친 기혼 여성들이 목소리를 찾아 나서려는 시도와 함께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담아낸다. 「승혜와 미오」는 가족을 꾸리는 문제로 부딪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 「마흔셋」은 트랜스젠더 자녀와 어머니의 관계를 그린다. 이 소설들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작은 애정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함께 읽어 보길 바란다. 
성해나의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은 전통적인 가족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돌봄과 연대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가의 등단작 「오즈」에서는 독거노인 오즈와 청년 하라가 하우스 셰어링을 하며, 처음에는 서로에게 무심한 타인으로 지내다가 서서히 고통과 상처를 나누며 관계를 맺어 간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족이 아닌 하라는 오즈의 죽음 앞에서 돌봄과 애도의 권리를 갖지 못한 채 관계 밖으로 밀려난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가 관계의 조건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비춘다.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 역시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외부의 타자를 어떻게 밀어내는지 그려낸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빛나는 연결의 순간들을 담아낸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혼자 사는 삶이 아니면 결혼만이 선택지로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두 여성이 결혼 외의 방식으로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하고 그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다. ‘여자 둘, 고양이 넷’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WC라는 분자식으로 표현된다. ‘분자 가족’은 화학 구조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질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망원동 이웃들과 서로 돌보고 지지하며 살아가는 정다운 공동체의 모습도 함께 그려낸다. 친밀함과 돌봄의 관계는 더 이상 혈연이나 법으로 맺어진 가족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행미 집필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문학에 나타난 가족과 여성, 소수자의 의미와 재현의 윤리를 중심에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미디어와 문학의 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요동치는 가족: 가족법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의 상상력』(2023), 『반영과 굴절 사이: 혐오 정동과 문화 재현』(공저, 2022), 「전혜린의 일기에 나타난 ‘모성’이라는 문제」(2023), 「번역의 수행성과 젠더 재현의 역학-로맨스 판타지 웹툰의 문화적 재구성」(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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