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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titude' Embodied and Performed by Literature scrap download

문학이 체현하고 수행하는 ‘태도’

‘<소년이 온다>는 언제 어디에서 읽어도 시의적절하다.’ 이것은 작품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현실의 참담함을 추인하는 진술이다.기실 이 소설이 2014년 5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사실은 소설의 수용사적 견지에서 중요한 맥락을 이루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는 소년들의 무덤 앞에서 초들에 불을 붙이고, 눈에 파묻힌 발목이 젖어가는 가운데 타들어가는 불꽃을 바라본다. 가냘픈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의지를 내재하는 응시의 힘. 사회적 재난과 참사,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죽음들 앞에서 <소년이온다>가 거듭 호명되는 가운데, 이 소설이 체현한 태도에 기대어 많은 이들이 삶을 버텨왔다. 인간의 인간 됨에 대한 환멸, 그러나 동시에 어떻게든 인간 됨을 껴안고 나아가야만 하는 간절함 ― 이것은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정동인듯하다.


한강 작가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은 K-컬쳐로 일컬어지는 한국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고조되는 흐름의 최정점에 배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적 한국학 연구자들이 지적해왔듯, 한국 고유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성찰을 수평의 차원으로 넓히고 한국사에 빼곡한 ‘어두운 부조리’를 고통스럽더라도 면밀히 살피는 것, 그리고 그 작업에 수반되는 긴장의 힘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논하는데 있어 긴요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한강 문학이 선취하고 수행해온 태도 그 자체라는 점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의 한국문학을 논하는 국면에서는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이 글에서는 문학이 견지하는 ‘태도’의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2020년대의 한국 소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제안에 따라, 번역서가 거의 출간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소개하였다. 동시대 한국문학 장의 소중한 작가들을 더 많이 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국내외의 눈 밝은 독자들이 독서를 확장하고 애정을 퍼뜨리며 각기 다른 ‘한국문학 추천작’을 끊임없이 갱신해주리라믿는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현재 한국 문학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김기태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아이돌 덕질,연애 예능 프로그램, 세대와 계급,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면면이 소설 안으로 녹아들어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 탁월하다. 현실의 세태에 대한 재빠른 크로키처럼도 보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향한 진지한 애정이야말로 돋보인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리고 동시대 한국문학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도 유의미한 지표가 되어줄 만한 소설집이다.


*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제5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 제15회젊은작가상, 제47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가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한국문학 평론가들은 2010년대 후반 이후 한국문학에 ‘퀴어적 전회(Queer turn)’가나타났다고 지적한다. 김병운은 특유의 지적이고도 진실된 응시로 오늘날 한국 퀴어 문학에 고유한 색채를 더해가는 작가로, 최근 문학 계간지에 실린 <만나고 나서하는 생각> 또한 수작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윤광호>의 경우에는 20세기 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광수의 <윤광호>를 변주하며 다시 쓴 소설이다. 김병운과 이광수의 소설을 견주어 읽으며 한국문학의 흐름과 시차를 입체적으로 체험해보길 권한다.


* 제13회젊은작가상, 제24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이완의 자세>

목욕탕을 주요 배경으로 활용하는 점이 독특하며, 벗은 채로 활보하는 여자들 간의 권력과 역동을 포착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나아가 소설은 세신사 엄마와 무용을 하는 딸을 중심으로 ‘몸’에 대한 다단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파고들며 사랑과 상처가 뗄 수 없는 단어임을 설득하는, 젊은 감각으로 그려낸 새로운 시대의 모녀 서사다. 이 소설 이후로도 여성들 간의 복잡 다단한 관계성과 돌봄이라는 문제에 관한 치열한 탐구를 이어나간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2022,민음사) 또한 일독을 권한다.


* 제38회신동엽문학상, 제1회 김유정작가상 수상 작가 

<초급 한국어>

디아스포라 문학, 경계인 문학의 견지에서 고유한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문지혁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영어로 글을 쓰는 이민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문지혁’이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오토 픽션적 성격 또한 지니고 있기에 이를 의식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독서가 가능하다. 2023년에 후속작 <중급 한국어>가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두 소설을 함께 읽으면 삶의 비루함을 직시하면서도 반짝이는 순간 또한 정당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시선을 좇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우수상,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유원>

성장소설의 맥락과 재난문학의 맥락이 교차하는 하나의 결절점이라 이를 만한 소설이다. 비극적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원’은 자신으로 인해 모두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음습하고 불길하게 느낀다. 그러나 친구들 곁에서 죄책감과 자기 혐오를 조금씩 내려두는 법을 익히며 삶을 다시 살아갈 용기를 회복해나가는 유원의 서사는 흡인력과 설득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손쉬운 낙관과 비관 모두를 거절하며 ‘사건 이후로도 이어지는 삶’에 대한 섬세한 고민 속에서 탐색을 이어나가는 작가의 문학적 행보 또한 미덥다.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제4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제69회 현대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전기화 집필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동시대 한국문학을 비평한다. 한국어로 쓰인 글을 읽고 그에 관하여 함께 대화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쓴 평론으로는 <끝내지못한 시간을 껴안는 법>, <공을 굴리며 빛을 더하기―이서수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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