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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May-June New Releases: Sustaining, Connecting, Moving Forward
지탱하고, 연결되어 결국 나아가는 우리를 위해, 5~6월 신간 도서입니다
「KLWAVE에서는 해외 독자들에게 다양한 한국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신간 소개 콘텐츠는 2024년 5월, 6월에 출간된 작품 중 국내 서점 교보문고의 ‘이달의 책’과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에 게재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 5일간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되었다. 지난해보다 2만 명 증가한 관람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관람객 중에서는 단지 ‘도서전에 가는 나’를 SNS에 과시하기 위해 방문한 이, 그래서 구매한 도서는 단 한 줄도 읽지 않는 이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꺼이 도서를 소비하기로 마음먹어준 독자들이 있기에 도서가, 문학이 여전히 존재함을 안다. 그리고 새로이 도래할 문학 소비 시대를 만들어가는, 그렇게 책을 매개로 연결될 독자들을 발견한다.
한국 문학을 굳건하게 지탱해 주는 독자들에게 지속되는 애정을 부탁하며 주목할 만한 5~6월 신간 도서를 소개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들까지 즐겁게 하기 충분한, 다채로운 장르의 도서들이 여기에 있다.
판타지 장르에 관심이 있을 독자들을 위해 국내 판매량 총 160만 부를 돌파한 소설 <룬의 아이들> 시리즈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 7권에서는 샤를로트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외에서도 기대를 받는 타임슬립 판타지 <셰이커>는 반복되는 시간 여행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각자의 고충을 견디며 삶을 살아내고 있을 모두에게 위로가 될 에세이 작품들도 있다. 페이스북에서 도서를 추천하며 유명해진 김미옥 작가가 <미오기傳>을 통해 자신의 고단했던 삶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은 신작 <허송세월>을 통해 여든의 나이에 삶과 죽음을 성찰하며 김훈 산문의 정수를 보여준다.
정갈한 언어로 삶을 고민하는 시의 언어들이 눈부시다. 여름의 색채를 담았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당근밭 걷기>를, <여름 외투>의 김은지 시인은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를 출간했다. 한편, 우리를 삶과 죽음의 경계로 데려다 놓는 작품들도 있다. 황동규 시인의 <봄비를 맞다>는 어느새 접어든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 얻은 깨달음을 담았다. 만 스물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차도하 시인, 그를 닮은 침착하게 당당한 언어가 <미래의 손>에 기록되었다.
청소년 문학의 선두 주자 <오백 년째 열다섯>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독특한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을 배우는 ‘가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8개국에 판권을 수출하며 전 세계 청소년에게 사랑받은 <죽이고 싶은 아이> 이꽃님 작가는 더 깊어진 인물의 내면을 담기 위해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완성했다. <일곱 번째 첫사랑>은 청소년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큰 두 우주, 풋풋한 사랑과 우정을 그리며 청소년의 성장을 담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신인 김기태는 첫 단편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건조하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우리 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존재들을 위로한다. 가장 선두에서 한국 문학계를 이끄는 젊은 여성 작가,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은 <쓰게 될 것>에서 늘 그래왔듯 자신만의 언어로 우리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맞선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조예은 작가가 신작 <입속 지느러미>를 발표했다. 인어 이야기와 세이렌 신화를 결합한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는 슬프면서 매혹적이다. 전 세계 14개국에 수출된 <연남동 빙글빙글 빨래방> 김지윤은 따뜻한 밥심이 두둑하게 담긴 <씨 유 어게인>의 세계로 또 한 번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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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Sitting Down, Read Standing Up
앉아서 하는 여행, 서서 하는 독서
소설가 조정래(81)는 “문학은 길 없는 길이다. 쪽배로 바다를 건너는 일이고, 낙타도 없이 사막을 건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운명과 자세를 갈파한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통해 독자는 한결 수월히 길을 만나고, 바다를, 사막을 건넌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도 했던 저 원로 작가의 말이 지당해진다. <태백산맥> <한강> <정글만리> 등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어온 조정래의 작품을 읽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험이 가능해진다. 과거를 감각하고 오늘을 이해하며, 내일을 상상하게 한다. 문학이야말로 쓰는 자에게도, 읽는 자에게도 여행인 셈이다.
이러한 은유 넘어,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실제 ‘여행’을 전제한다. 주인공의 처음과 끝이 달라지는 시공(時空)의 간격이 서사다. 이 여정에 희로애락은 물론 고통, 패배, 극복, 화해와 같은 기착이 있다. 서양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 <오디세이아>로부터 최근 여성들의 ‘오디세이아’를 표방하는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천척의 배> 등이 나오기까지 그 본질은 여전하다. 하물며 여행을 직접 다룬 문학 작품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목적지 정보나 얻고자 여행 문학을 읽던가. 길 위에서 웃고, 울고, 주저앉고, 뒹굴고, 보대끼다 마침내 한뼘 자라 우리는 더 멀리 떠나거나 귀환한다. 한국의 여행 문학이라면 단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첫손이다. 임금이 “타락한 문풍”이라 꾸짖은 중국 여행기다. 새 지식, 감성, 그리하여 새 문체로 빛났기에 군왕마저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1780년대 고전이 한 일이다. 오늘은 한국 여행 입문자를 위한 21세기 문학작품 5권을 소개해본다.
김훈, <자전거 여행>
소설가 김훈(76)이 한국 산천을 자전거 끌고 다니며 쓴 인문학적 에세이(2000)다. 신문기자 하다 47살 첫 장편소설을 내고서, 나이 쉰이 넘었던 때다. 동백, 매화 피고 지는 여수 돌산도 항일암, 5·18 광주의 망월동, 배설의 삶을 사색케 하는 전남 순천 선암사, 훗날 소설 <칼의 노래>로 이어질 충무공의 전장 진도, 노동하는 어부들의 포항 영일만, 그리고 서울의 젖줄 한강까지. 가는 곳마다 풍경이, 만난 사람이, 남겨진 선대의 시문이 어우러진다. 깊은 사유와 문장으로 흔한 산천이 흔해지지 않게 된다. 지금도 거기 그대로, 여러분을 기다린다.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발랄하고 고독한 ‘여행자’의 시집(2020)이다. 익살맞고 청승맞다. 게다가 많은 외국인이 사랑하는 한국의 섬 제주가 배경이다. 제주로 이주한 시인 이원하(35)의 시심은 모두가 각기 삶의 여행자란 선연한 사실과 그 여행자의 묘연한 마음에 닿아있다.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서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그는 노을과 함께 곧 이 섬을 떠나죠/ 그뿐이고 그러니 오늘뿐이고/ 모든 것들은 원래 다 그렇죠” 이 매력적인 경어체가 번역될 수 있을까. 제주의 맛은 여실히 전해지리라
조경란,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소설가 조경란(55)은 곧 등단 30년이 된다. 한국 문학상을 대표하는 이상문학상을 올해 받았다. 가족과 집이 ‘조경란 문학’의 시작인데, 이 단편소설집(2018)엔 가족과 집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다. 반복되는 세계를 벗어나 마흔 되기 전 전혀 낯선 환경에서 한달간 살리라 결심하는 여성, 어머니 잃은 친구를 조문하고자 일본에 간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어렵겠다는 편지를 돌연 아내에게 쓰는 25년차 가장, 로마에서 버스 타고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엄마와 다투는 딸 등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시작되어야 하는가 묻고 있다. 가족이 중요한 한국에서 이 질문은 던지기 어렵고, 답은 훨씬 더 구하기 어렵다.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젊은 여성 작가가 대세인 21세기 한국 문학계에서 소설가 김연수(54)의 존재는 귀하다. 2022년엔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현역 작가 50명 상대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소설’로 꼽히기도 했다. 이듬해 출간한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전국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작가에게 북토크나 강연회를 제안하면 대신 낭독회로 역제안해 준비한 소설 20편으로 엮였다. 서귀포, 김해, 창원 등지를 다녀가 만난 청중들에 의해 작품도 조금씩 변했다고 한다. 작가가 전혀 예상 못 한 대목에서 청중들이 울고 웃었다. 작중 서지희도 그랬던 것 같다. 경주행 수학여행 버스 사고로 아이를 잃고 방황하다 용기 내어 경주에 가본다. 그리곤 아예 눌러산다. 천년고도 보름달 무심히 비치는 곳, 누군가 웃는 곳. 거기서 서지희는 마음껏 울 수 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학자 김진영(1952~2018)이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고 임종 3일 전까지 기록한 산문집(2018)이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 사후 쓴 <애도 일기>가 추모라면, 이 책은 자신의 죽음으로 가는 여행의 추인이다. <애도 일기>가 기억이라면, 이 책은 기억 이전의 기록이다. 소설, 음악, 철학, 사람, 사랑, 삶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시와 다르지 않다. 단아하고 아프다. 강렬한 아포리즘이다.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 “내 마음은 편안하다” 쓰고 종착한다.
임인택 집필
<한겨레>에서 문학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입사해 탐사기획팀장, 스페셜콘텐츠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기자상을 네 차례 받았다. 관훈언론상을 받았다. <4천원 인생>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등을 공저했다.
사진집 캡션을 썼다. -
Magazine
[KLN Summer 2024] AKA Korean SF
[KLN 2024 여름호] Korean SF는 가능한가?
Korean Literature Now Summer 2024 (Vol.64)
In this issue, we examine the rise of science fiction in South Korea, tracing its historical roots back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nd looking at some of its most salient writers. In the past few decades, South Korea has become a major player in global science fiction production, not only in the form of translated books but also OTT movies, games, and webtoons. In this climate of intense science fiction production and consumption, we thought it would be relevant to ask, “What is Korean about Korean SF?” Put differently, “Is there such a thing as Korean SF?” These are deliberately polemical questions aimed at uncovering the unique dynamism and power of Korean science fiction. The answers we received from literary critics Sang-Keun Yoo, Yang Yun-eui, and influential Korean SF author Kim Bo-young are also lively and polemical.
Our featured writer is poet Kim So Yeon whose latest poetry collection Catalyzing Night was published last year to great acclaim. She speaks with Lee Jenny, another well-known poet, about poetry and politics, the female voice, aging, and the ten years it took to complete this book. In the Bookmark section, we introduce you to the short stoies of Lee Jangwook and Kim Umji, and poems by Park YeonJoon and Kim Bok Hui. In our Inkstone corner, we bring you an excerpt from Record of the Virtue of Queen Inhyeon, Lady Min, a fictive reconstruction of one of the best-known episodes of Joseon court history: the story of the fearsome rivalry between King Sukjong’s Queen Inhyeon and his treacherous Consort Jang Hui (better known as Jang Hui Bin).
From Joseon dynasty historical fiction to science fiction, there is much to savor and ponder in this issue of Korean Literature Now. We invite you to take a plunge and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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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Queering the Norm: Marching Beyond Pride
퀴어, 규범 바깥으로의 퍼레이드: '프라이드'를 넘어
‘프라이드 먼스 pride month’라 불리는 6월은 퀴어들의 명절이라 할 만하다. 이때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답게 살 권리’를 사회에 요구하며 전 세계 각지에서 떠들썩한 축제를 벌인다. 무지개 깃발들이 경쾌하게 나부끼고, 참가자들은 ‘자기다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남들과 다른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선호를 가졌다는 것이 비밀과 스캔들의 대상이 되거나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만 치부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적 공간에 드러낸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환희로 가득 찬 축제의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의 실제 삶은 자긍심과 수치심, 쾌락과 분노, 공포와 불안 등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들로 점철돼 있다. 이들이 ‘시민’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전략들도 다채롭다. 때로는 자신의 비규범적인 성정체성을 숨긴 채 정상시민의 규범에 순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소수자’로 분류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새로운 약속을 제안하기도 한다.
동시대 한국의 퀴어문학은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퀴어 (비)시민의 다양한 표정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나답게 산다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성적·계급적·세대적·인종적·언어적·지리적 요인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성실하게 탐구한다. 그리하여 한국 퀴어문학은 경직된 세계를 퀴어링하기 위한 전략들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흥미로운 정치적·미적 실험의 장이 된다.
조우리, 오늘의 세리머니, 위즈덤하우스, 2023
여자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에 꾸준히 관심 가져온 조우리의 최신작이다. 소설의 배경은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2023년 현재의 한국. 이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동성커플들은 종종 주민센터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접수하지만 수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혼인신고 업무를 담당하는 두 명의 레즈비언 공무원 ‘선미’와 ‘가경’은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여성노인 커플의 혼인신고서를 슬쩍 통과시켜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하기로 한다. 동성커플이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게 될 미래를 적극적으로 현재화하려는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현, 고스트 듀엣, 한겨레출판, 2023
<글로리홀>, <호시절> 등의 시집을 펴낸 김현의 첫 소설집이다. 많은 이에게 트라우마적 기억을 안긴 사회적 참사, 폭주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지지부진한 소수자 정책 등 소설은 201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수많은 죽음과 상실을 행간으로 삼아, 살아남은 이와 죽어 유령이 된 이를 조우하게 한다. 혐오와 차별, 가난과 고립이 상시적인 세계에서 그의 인물들은 대체로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술 마시고 농담하며 고성방가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세계의 가장자리로 자꾸만 밀려나는 이들에 대한 김현 나름의 애도와 투쟁 방식이다.
이은용,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제철소, 2023
2021년 2월에 세상을 떠난 FTM 트랜스젠더 극작가 이은용의 유일한 희곡집이다. 이은용의 인물들은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성인과 미성년, 사랑과 미움, 건전함과 불온함을 가르는 꽉 막힌 벽을 얼마든지 들고날 수 있는 문으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희곡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정신질환자들에게 삶은 사고처럼 황망하고 장난처럼 짓궂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세계를 도리어 의미심장한 농담거리로 만든다. 표제작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2020년에 처음 상연됐고 2021년에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수상했다.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민음사, 2022
김병운의 첫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는 그가 동시대 퀴어 담론과 치열하게 대화해온 흔적이 빼곡하다. 퀴어 재현과 당사자성, 모범적인 퀴어와 문란한 퀴어, 퀴어 간의 위계와 가시화의 경제 등 지금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에 김병운은 무람없이 접근하고 과감하게 개입한다.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의 규범은 물론, 동성애에 관한 규범적 담론 역시 누군가의 실제 삶과 욕망을 손쉽게 재단할 수 있음을 놓치지 않는 그의 소설은 결국 ‘퀴어를 재현한다는 것’에 대한 소설가의 자기성찰과 맞닿는다.
박선우, 우리는 같은 곳에서, 자음과모음, 2020
이 소설집에는 ‘게이다운’ 게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이 게이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부러 인정하지 않는 인물,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흔들리고 유예되는 마음에 관심을 둔다. 소설은 망설임, 박탈감, 불능감 같은 감정들을 ‘벽장 속 게이’나 디나이얼 게이의 것이라고 섣불리 확언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어중간하고 잠정적인 감정들이야말로 그들을 퀴어하게 만든다는 것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퀴어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말하는 최신 퀴어문학의 흐름 속에서 박선우의 소설이 이채를 발하는 이유다.
오혜진 집필
문학평론가. 서사·표상·담론의 성정치를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관심 있다. 문화비평집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썼고, <19호실로부터>, <연구자의 탄생>, <원본 없는 판타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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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April New Releases: Journeys into the Depths of the Human Psyche
깊은 내면으로의 탐험을 담은 3~4월 신간 도서입니다.
「KLWAVE에서는 해외 독자들에게 다양한 한국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신간 소개 콘텐츠는 2024년 3월, 4월에 출간된 작품 중 국내 서점 교보문고의 ‘이달의 책’과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에 게재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삶은 위태롭고 불안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사랑, 구원과 같이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있고, 이를 집요하게 곱씹는 3월과 4월의 신간 작품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권태까지 끌어안는 힘이 있다.
이번 3월과 4월에 출간된 도서 중에서는 다양한 언어의 번역서가 출간되며 해외 독자들에게도 이미 친근한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낯설게 느껴질 이름의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병률, 2024, 문학과지성사
사랑이 두려운 시대에 다시 사랑할 힘을 상기시킨다. 이병률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에서 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감정인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솔직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닿을 사랑의 시가 여기에 있다.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2024, 문학동네
한국문학의 숨겨진 보석, <여름과 루비>의 박연준이 다섯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라는 말에 (「불사조」) ‘조약돌’은 사랑이 정말 죽어버렸을 까봐 걱정했을까, 아니면 사랑이 죽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을까?
박연준의 등단 20주년 기념 신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이처럼 살며, 사랑하며 ‘뒤척일’ 때의 감정을 담고 있다.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시의 일이며, 그렇게 더 먼 세상을 내다보는 일이 시인의 책무라는 믿음을 실천한다. 묵묵히.
일러두기 : 2024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김기태, 박민정, 박솔뫼, 성혜령, 최미래, 2024, 문학사상
제47회 이상문학상에서는 조경란의 <일러두기>가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10개국에 소개된 <혀>의 저자이기도 한 조경란 작가는 이번 <일러두기>가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도시 변두리에 사는 이웃들이 서로 부딪치다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대상 <일러두기> 외에도 김기태, 박민정, 박솔뫼, 성혜령, 그리고 최미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2024, 나무옆의자
해외 18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며 주목을 받았던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이 <나의 돈키호테>로 돌아왔다. 2003년 비디오 대여점 ‘돈키호테 비디오’을 운영하던 ‘돈 아저씨’를 찾아 떠나는 솔의 여행은 과거의 아저씨를 찾아 떠나는 일이면서, 동시에 솔의 미래를 찾아내는 여정이기도 하다. 긴 모험을 통해 돈보다 중요한 꿈이 있다는 돈키호테의 말을 믿게 된 솔의 모험이, 독자들에게도 같은 울림을 줄 수 있길 기대한다.
원도, 최진영, 2024, 한겨레출판사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사랑받은 <구의 증명>부터 <해가 지는 곳으로>까지. 최진영 유니버스, 그 시작을 되돌아본다. 최진영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11년 만에 전면 개정되어 원제 <원도>로 발간되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그편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랐던 ‘원도’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처절하게 죽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던 원도의 모습은 독자에게 ‘왜 사는가’, ‘살고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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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Day Reads: Will Tomorrow's Sun Shine Upon Us Too?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며: 우리에게도 내일의 태양이 뜰까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말 ‘워라밸’(work-and-life-balance)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일 것이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으며,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쾌적한 생활을 하고, 충분한 여가 시간을 확보해서 취미와 자기계발에 쏟을 수 있는 삶을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런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비틀거리고 허덕거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일쑤이다. 특히 노동 유연성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득세 이후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생존 자체를 목표로 삼아 각자 분투하며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노동에는 부인하거나 억누를 수 없는 고유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수입을 위해 억지로 떠밀려 하는 노동, 때로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일지라도 노동자들은 그 안에서 활력을 얻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한국의 시인·소설가들은 그런 노동의 빛과 그림자를 포착하고 묘사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았다.
장강명, 재수사, 은행나무(한국), 2022
장강명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월급사실주의’라는 동인을 결성해 활동 중이며,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2023)라는 합동 소설집을 낸 바 있다. 기자 출신인 그는 연작소설집 <산 자들>에서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경제·사회적 실상을 핍진하게 그린 바 있다. 장편 <재수사>에서 그는 22년 전에 벌어진 미제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들을 등장시킨다. 기자 출신답게 꼼꼼한 취재를 거쳐 집필한 이 소설에서는 강력계 형사들의 업무 방식이 실감 나게 그려진다.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고된 노동과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동료들끼리 격려하며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평소 잘 알기 어려웠던 형사들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이현석, 덕다이브, 창비(한국), 2022
이현석은 현직 의사로서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의 첫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2021)에는 그런 작가의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첫 장편 <덕다이브>는 발리의 한국인 서핑 캠프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주요 등장인물들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여성들이다. 한 인물은 최근 한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 간호사들 사이의 괴롭힘 문화 ‘태움’의 피해자였고, 다른 한 인물은 그런 괴롭힘을 보면서도 방관하거나 어느 정도로는 동조하기도 했던 이다. 소설은 서핑 강습 과정이라는 표면적 서사 아래에 지난 시절의 태움 문화로 대표되는 학대 관행에 대한 비판과 반성, 그리고 그런 곡절을 거친 두 주인공이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인다.
김현진, 녹즙 배달원 강정민, 한겨레출판(한국), 2021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2년 가까이 실제로 녹즙 배달원 일을 한 경험에서 태동되었다. 주인공 강정민은 녹즙 회사에 직접 고용된 상태가 아니라 판매 수당을 받는 ‘위탁판매원’에 가까운 처지. 이 여성 노동자는 신분이 불안정하고 수입이 들쭉날쭉한 데다 거래처에서는 각종 갑질과 성희롱, 모욕에 시달려야 한다. 시름과 화를 술로나 달래는 주인공은 웹툰 작가가 되겠다는 꿈과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친구들 덕분에 넘어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루하루 일상을 이어 간다. 강정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을 응원하는 가운데 자신 역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권유수, 미래 변호사 이난영, 안전가옥(한국), 2024
사람들이 인간 변호사보다 안드로이드 변호사를 선호하게 된 2077년, AI 변호사들에 맞서 도전장을 내민 이난영. 허름한 사무실과 촌티 나는 말투로 신뢰감을 주기 어려워 보이는 주인공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이난영은 국지적 기억 소거 수술 금지를 주장하는 의뢰인을 대신해 법정에서 안드로이드 변호사와 법률 다툼을 벌이는 한편,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을 클라우드에 업로드 하려는 딸 모래의 꿈 앞에 엄마로서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자타공인 테크노포비아인 이난영이 일과 삶 양쪽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적 ‘마음’의 결합 가능성을 열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용훈, 근무일지, 창비(한국), 2022
이 시집은 이 시대 불안정 고용 노동의 현장 보고서와 같다. 재개발 철거 작업, 아파트 건설 공사, 터미널 짐 나르기, 하수구 오물 청소, 폐쇄병동 보호사, 모텔 청소부 등 시인 자신의 경력을 반영한 각종 현장은 노동의 존엄이나 보람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기는커녕 사고로 인한 부상과 죽음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이 이 현장들이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이 현장들을 요즘은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대신 채우고 있고, 시인은 그런 현실 역시 충실하게 시집에 담고 있다. 80년대의 목소리 높은 노동시들과는 다르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집이다.
최재봉 집필
한겨레신문에서 1992년부터 2022년까지 문학 담당 기자로 일했다.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이야기는 오래 산다> <거울나라의 작가들> 같은 책을 썼고, <지구를 위한 비가> <악평: 퇴짜 맞은 명저들> <에드거 스노 자서전> 같은 책을 번역했다. 2022년 정년퇴임 뒤에는 계약직 선임기자로 일하며 문학과 출판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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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fort Meets Cool: Q1 2024 Bestsellers from Korea
익숙함이 곧 트렌드가 된, 2024년 1분기 한국문학 베스트셀러를 만나보세요.
2024년 상반기 한국 문학은 ‘익숙한 것들’을 향한 독자들의 선택이 이어진 해였다. 주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한국 문학 중 2024년에 출간된 도서는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 한 권 뿐이었으며, 이마저도 2023년 주요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었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의 후속 시리즈였다. 지난해에 이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문학 도서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올해 들어 새롭게 주목받은 화제의 도서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출판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검증된 작가, 개정판 출간, 시리즈 도서처럼 이미 성공이 한 차례 증명된 도서들을 중심으로 한 ‘안전한 선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는 ‘믿고 보는 작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작가의 전작인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에 이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최은영 문학’의 저력을 과시했다. 전작들을 통해 증명된 작가의 문학성이 공고한 팬덤을 형성했고, 이로써 신작을 내면 평단과 시장의 주목을 동시에 받는 대표 소설가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처럼 이미 증명된 작가의 신작이 사랑받는 현상은 신진 작가가 등장하기 어려운 출판계의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신진 작가의 소멸 뿐만 아니라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경향의 소설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최근 문학 출판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대신 과거작에 새로운 표지와 편집만 덧입혀 개정판으로 재출간하는 일이 늘었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3위에 오른 양귀자의 <모순>(2013)은 1998년에 최초 출간된 작품이고 13위에 오른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2023) 역시 2015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이다. 2017년 출간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2023) 역시 지난해 개정판으로 재출간됐다.
이외에도 <불편한 편의점>,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어서오세오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처럼 일상 속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이른바 ‘힐링소설’들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을 공고히 지키고 있는 것 역시 하나의 경향이 됐다.
익숙하고 오래된 소설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데는 계속되는 출판시장의 침체가 한몫을 했다.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인기작이나 인기 작가의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것이 적자를 줄이고 판매를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집필자 한소범
한국일보 기자. 문학 전문 뉴스레터 ‘무낙’을 연재하며 다양한 서평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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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5 Books to Celebrate Earth Day: Even If the Earth Should Perish
지구의 날 특집: 멸망한 지구가 오더라도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지구와 내가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함을 지독한 대가를 치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일상을 회복한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편리함과 빠른 속도가 다시 불편함과 느림을 이기려고 드는 사이, 지구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빙하가 녹고 생태계가 무너지고 생물종의 다양성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를 나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려는 문학 작품들은 그런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지구의 날을 맞아 지구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와 소설 작품들, 더 나아가 기후 위기 시대에 돌봄의 문제를 고민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의 지구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4
공현진의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성인 기초 수영반에서 늘 꼴찌인 곽주호와 문희주를 통해 늘 남보다 앞서려고 드는 우리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망친 세상과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꿀벌이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희주와 주호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다른 이를 짓밟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멸망하는 세상에서라도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고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와 “갈 수 있는 만큼” 가 보려고 한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정세랑, 「리셋」, 『목소리를 드릴게요』, 아작, 2021
정세랑 작가의 SF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실린 단편 「리셋」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지렁이가 내려와 인류의 문명을 무너뜨리고 갈아엎는 이야기이다. 미래에서 거대 지렁이들을 내려보내 콘크리트 빌딩과 방만한 도시를 무너뜨림으로써 지구의 멸망을 늦춘 과학자의 이야기는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상상해 보게 한다. 리셋된 지구에서 인류는 더 이상 다른 종을 지배하지 않고 기분 나쁜 풍요 대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
김선우의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만 멈출 것을 명령한다. 욕망을 멈출 줄 몰라 구제 불능이 되어버린 지구 환경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김선우의 시는 지금이야말로 멈추어야 할 때임을 경고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 없이 살처분 당하는 동물의 현실은 머잖아 인간을 향할 것이다. 김선우의 시는 기후 위기 시대에 시가 할 수 있는 몫은 대신 “울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시가 그리는 취약한 이들의 공동체는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게 한다.
문태준,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2
문태준의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는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고 느린 여백의 시간을 체험하게 해 준다. 문태준 시의 세계는 위계가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나란히 함께 있는 연대의 세계이다.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상상하게 함으로써 문태준의 시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게 한다. 문태준의 시를 읽으면 우리가 개개의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산과 들을 누비며 꽃과 나무와 새와 더불어 자란 시인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계를 이 시집에서 만나보기 바란다.
김혜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문학과지성사, 2022
그리핀 시문학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는 어머니의 죽음과 지구의 죽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과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김혜순 시인은 슬픔의 연대를 상상한다. “외출을 할 땐 얼굴의 구멍을 다 막”아야 했던 팬데믹의 시절을 통과하며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을 실감해야 했던 시인은 “인류의 멸종을 가동한 상영관”으로 지구를 호명한다. 죽음으로 인한 부재, 그 상실감이 함께 눈물 흘리는 슬픔의 연대를 생성해 낸다.
이경수 집필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주요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다시 읽는 백석 시』, 『백석 시를 읽는 시간』, 『아직 오지 않은 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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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The Pulse of Korean Literature: New and Timeless Releases for January-February
박동하는 한국문학, 새롭고 또 여전한 1~2월 신간도서입니다.
「KLWAVE에서는 해외 독자들에게 다양한 한국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신간 소개 콘텐츠는 2024년 1월, 2월에 출간된 작품 중 국내 서점 교보문고의 ‘이달의 책’과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에 게재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작가들부터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던 1~2월 신작 중 몇 가지 작품에 주목하여, 각자만의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에 안착할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려 한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소개된, 시간이 지나도 굳건한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가 산문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개정판으로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전 국민의 “풀꽃 시인”이자 BTS의 추천으로 해외 독자들에게도 유명한 나태주 역시 담백한 진심을 담은 산문집 『좋아하기 때문에』를 출간했으며, 첫 시집으로 100만 부를 판매하며 1980년대를 뒤흔들었던 노동 시인 박노해까지 첫 자전 수필 『눈물꽃 소년』으로 돌아왔다.
묵묵하게 자신만의 견고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 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두드러졌다. 최진영 작가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문학계를 휩쓸었던 『이제야 언니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에 이어 신작 『오로라: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로 돌아왔다. ‘빛의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백수린은 십 년 만에 다시 묶은 첫 소설집 『폴링 인 폴』 개정판으로 오랜 독자들과 새로운 독자들 모두에게 인사를 전했다.
한편 지금, 이 순간 가장 꾸밈없는 감각으로 써 내려간 진솔한 이야기들도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구독자 140만 명 ‘빠더너스’ 크리에이터 문상훈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발간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을 뿐만 아니라 출간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밀리언 셀러 작가 이기주는 『보편의 단어』에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고찰하며 전작 『언어의 온도』의 인기를 이어간다.
유혹적인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며 ‘역시나’ 사랑받는 작품들도 있었다.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연대와 자유, 그리고 그 끝에 가닿을 희망을 발견하는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으로 재탄생함에 따라 다시금 집중받고 있다. 국내 베스트셀러 도서에 등극할 뿐만 아니라 영미권 포함 28개국에 수출되었던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힐링 소설’ 대표 주자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신작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으로 환상적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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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Take a Brief Moment Breaking away from the Calculations of Productivity and Efficiency
휴식, 생산과 효율의 계산식에서 벗어나기
[Korean Literature Now] Breath, Respite, Emptiness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생산성과 효율의 복잡한 계산식에서 고민하던 삶을 멈춰보자고 제안합니다. 잠시 서서 숨을 고르고, 삶을 가득 채웠던 것들을 비워내자는 목소리들을 전합니다.
숨, 휴식, 빔을 주제로 한 KLN의 봄호에서는 윤경희 평론가, 민병훈 작가, 그리고 주민현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온 여름,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았던 곰팡이와 공존하게 된 윤경희 평론가의 깨달음을 담았습니다. 일에서 최선을 다하듯 휴식에서도 최선을 다한 적 있냐는 민병헌 작가의 물음은 휴식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집니다. 주민현 작가는 매일을 가득 채운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독해지고,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합니다.
숨 쉴 틈 없이 바삐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삶을 일시 정지하고, 잠시 쉬었다가 가면 어떨까요? 문학이 전하는, 그리고 문학을 통한 휴식을 느껴보세요.
그 밖에도 KLN의 봄호에서는 최은미 작가의 인터뷰와 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더불어 북마크 작품으로 임솔아 작가의 <신체 적출물>, 윤해서 작가의 <재현과 현시>, 시인 이민하와 황유원의 작품을 만나볼수 있으며, 고전 문학 작품으로 <운영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삶을 직시하고 온몸으로경험하는 작가 임솔아의 첫 소설집. 시적인 문장 안에 진중한 사유를 함축하여 한국문학의 깊이를 더하는 임솔아의 작품세계를 단편집으로는 처음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임솔아가 고르고 골라 배치해둔 단어들은 시어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말해지지 않은 의미로 고요히 채워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울림을 발산한다.
《미기후》 “미기후”는 아주 작은 범위 내의 기후를 일컫는 말로서, 흔히 지면에서 1.5미터 정도 높이까지를 측정 대상으로 한다. 좁은 구역마다 서로 다른 기후를 지닌다면, 이 기후를 느끼기 위해선 직접 구역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이민하의 시집에서 ‘미기후’의 체험은 각자 ‘피의 날’이라고부를 만큼 폭력적인 시간들을 견뎌온 여성들이 주변의 “어딘지 낯익은”(「문학개론」) 서로를 발견할 때 시작된다.
《하얀 사슴 연못》 꾸준하게 단단한 사유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감성적 언어가 고요한 음악이 되고, 감각적 이미지가 순백의 풍경이 되는 서정의 신세계를 제시한다. 또한 자연(사물)을 순수한 관념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적 모더니즘의 고전 반열에 오른 정지용의 『백록담』(1941)을 시집 곳곳에서 오마주해 눈길을 끈다. 이 시집에는 현대문학상수상작이자 표제작 「하얀 사슴 연못」을 포함하여 55편의 시를 실었다.
《세상의 모든 최대화》 제3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출간되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데뷔하여 남다른 사유의 깊이와 언어적 발랄함으로 주목을 받아 온 황유원 시인의 첫 시집이다.